한국사에 대하여
1. 선사시대
지금부터 한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이번 글에서는 선사시대 즉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에 걸쳐서 시대 순서대로 정리해보겠다.
(1) 구석기 시대
1) 초기 구석기 시대
호모 에렉토스로 증명된 화석은 한반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구석기시대의 도구제작 공예품은 현재 함경북도, 평안남도, 경기도, 충청남북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는 5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적어도 40만년 전에서 최소 60만~70만년 전에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산악지대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90여 곳의 구석기 유적이 출토되고 있는데, 큰 강가나 하천 주변에서 집단생활을 하던 유적이 발견되기 때문에 주로 하천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협동적으로 사냥을 하며 생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사냥할 때 단순한 돌과 나무를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반도 구석기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로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와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에서만 구석기 문화 유적 발굴이 이루어졌고, 그 외 구석기 유물들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빙하로 뒤덮인 흔적은 없지만 주변 지역과 굴, 정보 등으로 유명하다. 지표면 아래 11m의 층은 장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층으로 적어도 30만 년 전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역은 석장리에 살았던 초기 구석기인들의 주요 생활 터전으로 보인다.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9도 정도 낮았다. 그 위의 문화층은 긁개가 풍부하며, 칼날을 분석했을 때 주로 동물을 잡아 껍질을 벗기는 등의 활동으로 음식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나 뼈를 깎는 등의 활동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2) 중기 구석기 시대
중기 구석기인들의 활동에서 달라진 것은 가정용 칼날과 톱니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중기 구석기인들이 나무나 풀줄기를 자르고 깎은 것을 말하는데, 기둥과 막대기를 세워 함께 묶어서 생활했기 때문에 움막을 지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층보다 1m 이상 높은 지표면 아래 5.6m 지층에서는 양날의 주먹도끼 등이 나타났다. 또한 돌망치가 모룻돌과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모룻돌에 부딪혀서 벗겨낸 뒤 망치로 꼼꼼하게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이 층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거주한 것으로 파악되며, 발굴 지역에서 가족의 수는 1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3) 후기 구석기 시대
최상층은 세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미술 활동도 활발하였다. 석장리 구석기 시대 후기의 집터에는 문석 150㎝ 사이에 높이 50㎝ 정도의 기둥구멍과 석벽이 있었다. 문석 안으로 들어서자 불을 때웠던 자리, 개 모습의 흉상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인간과 동물의 털, 목련, 동물의 발자국 또한 발견되었다. 돌을 잡는 법을 배워 아름다운 석기를 만들기도 했다.
(2) 신석기 시대
한반도와 만주에서 고대 조선인들이 활동하던 기원전 8000년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의 기간이다. 대표적인 유물이 빗살무늬 토기라 빗살무늬 토기 시대라고도 부른다. 사람들은 강이나 바다 옆에 오두막을 짓고 정착했다. 다른 씨족의 결혼에 의해 부족사회를 형성하고 고령자나 경험자가 주도하는 부족사회였다. 신석기 혁명이라 불리는 농업이 시작되면서 밭농사(조·껍질·누룩 등 잡곡 재배)의 중심지였으나 중요한 식량 개발 수단 때문에 여전히 어업과 수렵이 병행되어 진행되었다. 토기는 음식을 조리·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가락바퀴와 골침을 이용하여 원시적인 수제 산업이 생산되었다.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템주의, 영혼숭배, 조상숭배 등의 원시적 신앙이 발생했다. 흙으로 만든 얼굴 모양, 조개껍질 예술, 동물 뼈와 이빨로 만드는 예술 활동을 했다. 우리나라는 그 당시 한반도가 따뜻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했다. 기원전 2000~8000년 사이 기온이 점차 상승하여 이 시기에 중부 지방이 낙엽성 대도시림 지역으로 들어가고 북부 지역은 침엽수림을 형성했다. 기원전 8000~7000년경에는 현재와 비슷한 기온으로 이 시기에 남부 지역이 상록활엽수림에 진입하여 기원전 7000년에 이르러 북부 지역까지 낙엽성 대도시림 지대가 펼쳐졌다. 이 시기는 해면이 다소 높았고 바닷물 온도도 약 3℃ 높았다. 기원전 5000년에서 3800년에 걸쳐 다시 기온이 내려가 기원전 2400년경이 가장 추웠다. 그동안 기온이 떨어지면서 해안선이 바다를 향해 후퇴하였고, 특히 기원전 4400~4000년경에는 한습 기후로 육지가 높아져 전 세계적으로 중위도에서 대규모 홍수가 관측되었으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기원전 3800년부터 2000년까지 기후가 춥고 중부 지역에 침엽수림이 늘어나면서 해안선은 바다를 향해 더욱 후퇴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로 물가에 오두막을 짓고 창, 그물 등의 첨단 장비로 어업을 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또한, 통나무를 조각하여 배를 만들고 강이나 근처 바다로 이동했다. 그들은 토기를 만들고, 조리하고, 저장한 음식을 만들었다. 옷과 그물을 만들기 위해 옷의 가락바퀴와 뼈바늘이 사용되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도구와 토기는 다음과 같다. 가락바퀴, 뼈바늘 이른 민무늬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원시적인 신앙이 농업이나 목축 등의 생산 경제에 의해 발전했다. 신석기 시대의 원시 신앙은 다음과 같다.
- 애니미즘 :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과 존재를 포함하는 신앙
- 토테미즘: 영이나 조상을 숭배하는 신앙
- 샤머니즘: 샤먼을 중심으로 한 종교체계로 무당이 신을 불러드리는 신앙 조상 숭배: 태양 숭배, 내세 신앙 등의 동침신전양와장(東枕伸展仰臥葬)
(3) 청동기 시대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이다. 청동제 단검, 거울, 보석, 무기가 발견되었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정치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쌀·팥·콩·조 등이 재배되었고, 큰 고인돌 매장지를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경제 활동은 적어도 어업이나 수렵채집의 기본 단계를 넘어 식량 자급 단계에 있었다. 반달 모양의 돌칼이 존재하는 것은 농업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은 곡물을 만족했다는 가능성이 크다. 또한 청동기 제조를 통해 신분 제도의 조기 정착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청동기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기반은 곧 고대국가를 확립하는 힘과 조직의 원천이 되었다. 청동기 시대에 발굴된 도자기는 주로 민무늬 토기로 구릉 지대에서 발굴되고 있다. 특히 무늬 토기와는 달리 편편한 밑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다음과 같다.
- 민무늬 토기
- 미송리식 토기
- 붉은 간토기, 검은 간토기
청동기가 발견되는 대표적인 무덤은 다음과 같다.
- 널무덤
- 돌널무덤
- 고인돌: 고인돌의 전파 경로는 불분명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만주, 한국, 그리고 일본의 구주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최근의 연구에서 고인돌은 기원전 8세기 전에 시작하여 기원전 3세기 또는 2세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4) 결론
지금까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의 흐름 순으로 선사 시대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다음 글에서 이어서 상고 시대에 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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