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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한국사에 대하여 3. 삼국시대

by melodic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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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하여

3. 삼국시대

  이번 글에서는 선사시대, 상고시대에 이어서 한국의 삼국시대에 대해 알아보겠다. 한국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나라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있다.

 

(1) 고구려

 

고구려 벽화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주몽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후 태조는 정부를 중앙집권화하였다. 고구려는 소수림 왕의 치세인 372년 불교를 국교로 채택한 최초의 나라였다. 고구려는 고려라고도 불리며 한국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3세기와 4세기는 중국 및 시안베이와의 영토 경쟁이 특징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손실과 이익을 모두 가져왔다. 고구려는 고구려를 건국하고 242년 영토에 대한 중국인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요새를 공격했다. 조위는 244년에 한반도를 침략하고 파괴함으로써 보복했다. 이로 인해 왕은 조위와 함께 도망쳐 옥조와 예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를 깨고 그 경제에 손해를 입혔다. 왕은 결국 새로운 수도에 정착했고 고구려는 재건과 지배권 회복에 집중했다. 4세기 초 고구려는 다시 중국인들을 공격해 한국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고, 이번에는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레란과 다이판을 정복해 한국에서 중국인의 존재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고구려의 확장은 시안베이와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시안베이는 4세기 중반 고구려의 수도를 황폐화시켰고 왕은 퇴각했다. 고구려는 4세기 후반 고구려에 의해 다시 세력을 확장했고 광개토대왕의 정복으로 정점에 이른다. 고구려는 5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동아시아의 막강한 제국과 열강의 하나가 되었다.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 장수가 만주 거의 전역, 내몽골 일부, 러시아 일부로 확대되어 현재의 서울을 백제로부터 빼앗았다. 고구려는 광개토와 장수 아래 황금기를 겪으며 백제와 신라를 함께 정복하고 조선 삼국통일을 이루어 한반도의 가장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다. 장수 79년간의 긴 통치는 고구려의 정치적, 경제적 및 기타 제도적 장치가 완전해졌음을 보여준다. 고구려는 매우 군국주의적인 국가로 한반도의 지배권 다툼과 더불어 여러 중국 왕조와 많은 군사적 충돌을 겪었다. 백만 명 이상이라 불리던 거대한 세력을 무찌르고 수나라의 멸망에 기여한 고구려-수나라 전쟁이 대표적이다. 642년 막강한 장군 연계소문이 쿠테타를 주도하면서 고구려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2) 백제

 

  백제는 기원전 18년 고구려의 시조인 온조에 의해 건국되었다. 백제와 고구려는 건국신화를 공유하며 부여에서 유래하였다. 삼국유사에는 백제가 한강유역(현재의 서울 근교) 마한동맹의 일원으로 언급되어 있다. 한반도 남서부(충청도, 전라도)로 확대되어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백제는 고구려와 중공군 사령부와 영토를 둘러싼 야심찬 대립이 심해졌다.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마한의 나라를 모두 흡수하여 서한의 대부분을 중앙집권정부에 예속시켰다. 백제는 영토 확장기에 남조와의 해상 접촉을 통해 중국의 문화와 기술을 획득했다. 백제는 해양 강국이었고, 그 항해 기술은 동아시아의 페니키아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불교를 동아시아로 전파하고 대륙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백제는 한자, 불교, 철기 제작, 첨단 도자기, 제사 등 문화 발전을 고대 일본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백제가 신라·당 동맹에 의해 정복된 후 백제 궁정이 일본으로 퇴각하자 다른 문화적 측면도 전해졌다. 백제는 일찍이 한반도의 군사대국이었으나, 특히 근초고왕 때 광개토대왕에 의해 크게 패하고 쇠퇴하였다. 백제는 660년 신라와 당 연합군에 의해 패배했다.

 

(3) 신라

 

  전설에 따르면 신라 왕국은 기원전 57년 한국 남동부 지역인 박혁거세가 진한 동맹의 6개 장국을 통일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영토에는 현재의 항만도시인 부산이 포함되어 있어 신라는 나중에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왜구를 멸망시킬 책임을 지는 바다 강국으로 부상했다. 독특한 금 금속세공을 비롯한 신라 유물들은 고구려나 백제보다 중국의 영향력이 적은 북유목민, 이란인, 특히 페르시아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신라는 낙동강 유역을 점령하고 도시국가를 통합함으로써 급속히 확대되었다. 2세기까지 신라는 큰 국가가 되어 인근 도시국가를 점령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신라는 562년 가야연맹을 병합하여 더 큰 권력을 얻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 일본의 압력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아 여러 시기에 백제 및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싸웠다. 신라는 한국 삼국 중 가장 작고 약했지만 교활한 외교수단을 이용하여 보다 강력한 한국 왕국, 그리고 결국 당나라와의 기회주의적 협정과 동맹을 맺어 큰 이익을 얻게 되었다. 660년 신라 무열왕은 백제를 공격하라고 군대에 명령했다. 김유신 장군은 당군의 도움을 받아 백제를 정복했다. 661년 신라와 당은 고구려로 진군했다가 격퇴당했다. 무열의 아들이자 김씨 조카인 문무왕은 667년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이듬해 고구려가 함락되었다.

 

(4) 가야

 

  가야는 서기 42년부터 낙동강 유역에 있던 작은 왕국들의 연합체로 삼한시대의 변합 연합체에서 발전했다. 가야의 평야는 철이 풍부하여 철기 수출이 가능하여 농업이 번성하였다. 초기에는 김해 지역에서 금관가야가 연합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5세기 이후 그 주도권이 고령 지역의 대가야로 바뀌었다. 가야는 계속해서 주변 삼국과 전쟁을 벌이며 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발전하지 못하다가 562년 신라에 흡수되었다.

 

(5) 결론

 

  지금까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로 이루어진 삼국시대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이어서 다음 글에서는 남북국 시대에 대하여 서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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