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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한국사에 대하여; 시대적 흐름에 따른 각 나라에 대한 고찰 7. 고려 [3] 고려 후기

by melodic 2023.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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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하여

시대적 흐름에 따른 각 나라에 대한 고찰

 

7. 고려

 

  이번 글에서는 고려 시대 후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3] 고려 후기

 

  1270년 이후 고려는 반 자치적인 성격을 띤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몽골과 고려 왕국은 혼인과 결부되어 고려는 80여 년간 원나라 신하가 되었으며, 고려 군주는 주로 황실의 사위였다. 그 후 조선 왕들이 모두 몽골 공주들과 결혼하였다. 원 왕조의 마지막 황후인 기황후는 고려 하급 관리의 딸이었는데, 그녀가 원나라에 파견됨으로써 80년 동안 양국이 얽혔다. 기황후는 많은 공려들 중에 한 명으로 원에 보내졌다. 이는 고려가 몽골에 항복했음을 나타내는 표시였으며 1365년에 황후가 되었다. 기황후는 원나라와 고려 궁정 모두에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나라에서 정식으로 왕이 된 아버지나 고려의 왕보다 권위를 얻을 수 있었던 그녀의 오빠 기철 등 가족의 위상과 영향력까지 크게 높일 수 있었다.1356년에 공민왕은 기황후의 일족을 숙청했다. 고려의 왕들은 마르딘, 위구르족, 몽골족의 다른 가문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고려의 왕 중 한 명이 쿠빌라이 칸의 가장 사랑받은 손자였다고 주장된다. 고려왕조는 1350년대에 공민왕이 원나라의 몽골군을 물리칠 때까지 원나라 아래에서 생존했다. 1356년까지 고려는 잃어버린 북방영토를 되찾았다.

 

(1) 공민왕의 마지막 개혁

 

  공민왕이 즉위했을 때 고려는 몽골, 즉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원나라 궁정에서 강제로 몇 년을 보내야 했고, 1341년에는 실질적인 죄수로 그곳에 보내져 왕이 되었다. 그는 몽골의 노국공주(인덕왕후)와 결혼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에 원나라는 붕괴되기 시작하여 곧 1368년에 명나라로 대체되었다. 공민왕은 고려 정부를 개혁하고 몽골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개혁은 모든 친몽골 귀족과 군인을 그 자리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몽골은 침략 후 고려 북부를 병합하여 쌍성부와 동녕부로 제국에 편입하였다. 고려군이 이들 지방을 탈환한 것은 쌍성의 몽골군을 섬겼던 관리 이자춘과 그의 아들 이성계의 덕분이었다. 이어 이성계 장군과 지영수 장군이 요양으로 원정을 주도했다. 1365년에 공민왕의 아내 노국이 죽은 후 그는 우울증에 빠졌다. 결국 공민왕은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그 큰 임무를 신돈 스님에게 맡겼다. 하지만 6년 뒤 신돈은 그 자리를 잃었다. 1374년에 공민왕은 홍륜과 최만생 등에 의해 살해됐다. 그 후,고위 관리였던 이인임이 정부의 지도자로 취임하여 11세 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을 즉위시켰다. 이 격동기 동안 고려는 1356년에 요양을 일시적으로 정복하여 1359년과 1360년에 두 차례의 대규모 침입을 격퇴하고 1364년에 최영장군이 침략한 몽고도문을 격파하여 고려를 지배하려는 최후의 시도를 물리쳤다. 고려는 1380년대 왜구의 위협에 눈을 돌려 최무선이 만든 해군포를 이용해 수백 척의 해적선을 전멸시켰다.

 

(2) 고려의 멸망

 

  1388년에 우왕(공민왕과 첩의 아들)과 최영장군은 오늘날 중국의 요녕성을 침략하기 위한 작전을 계획했다. 우왕은 이성계 장군을 지휘했으나, 이성계는 국경에서 멈춰 서서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는 마지막 고려왕 3명을 처형한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 장군에 의해 몰락하였고, 이성계는 1392년에 조선왕조를 건국한다.

 

(3) 결론

 

  지금까지 고려 후기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어서 고려 시대의 문화, 종교 및 예술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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