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대하여
시대적 흐름에 따른 각 나라에 대한 고찰
7. 고려
이번 글에서는 고려 시대 중기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고려 중기
(1) 여진족과의 싸움
압록강 지역의 여진족은 후삼국시대 왕건 때부터 고려의 속국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요나라와 고려 사이의 긴장을 이용해서 여러 차례 충성의 자세를 바꿨으며, 고려는 이들이 국경 경비에 위협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여진족은 그 대가로 호화로운 선물을 기대하며 고려에게 공물을 바치곤 했다. 그들은 고구려와 거란족의 관계를 고려하여 고려를 '모국'이라 불렀다. 하지만 1019년 요나라가 고려에게 패배함에 따라 거란의 완안족은 여진를 통일하고 세력을 확대하였다. 12세기 들어 고려는 옛 고구려 영토를 되찾겠다는 다짐을 하고, 야심찬 예종의 주도로 1104년부터 1109년까지 두 차례 군사작전을 펼쳤다. 윤관, 척준경 등 저명한 장군을 중심으로 훈련받은 별무반(특수전군) 25만여 명이 처음에는 여진족의 영토를 휩쓸고 정확한 위치가 논란이 되고 있는 아홉 개의 요새(동북9성)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침략 후 많은 여진족들이 고려군에 항복하였으나, 많은 부족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완얀족을 중심으로 한 격렬한 저항을 재개하여 전쟁 국면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완얀 우야수가 이끌었던 여진족은 승리를 거두었고, 고려는 마지못해 완얀족과의 평화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후에 여진족이 공물을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 우야수에게 9성을 주었다. 과거 조상인 고구려의 땅을 되찾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고려는 진나라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1103년부터 1113년에 걸친 여진족의 지도자 우야슈의 통치 기간 동안 양국의 국경은 안정되었고, 고려군은 여진족의 영토에서 철수하여 여진족이 분쟁 지역을 지배했음을 인정했다. 1115년에 여진족은 1126년 진나라의 건국하고, 1125년에 고려의 종주국이였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침공했다. 이런 상황 변화에 대응하여 고려는 1126년에 진나라의 속국임을 임을 선언했다. 그 후 평화가 유지되면서 진나라는 실제로 고려를 침략한 적이 없었다.
(2) 고려 중기의 권력 투쟁
인주 이씨 가문은 문종 때부터 17대 인종에 이르기까지 여인을 왕에게 시집보냈다. 결국 인주 이씨 가문은 군주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획득했다. 이것이 1126년 이자겸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군주의 힘은 약화되었고 고려는 귀족들 사이에서 내전을 겪었다. 1135년 명청은 수도를 서경(현재의 평양)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고, 이 제안은 귀족을 분열시켰다. 묘청을 중심으로 한 파벌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만주로 확대할 것을 신봉했다. 반면 다른 한 파벌은 김부식(삼국사기 저자)이 주도했으며, 현상 유지를 원했다. 묘청은 왕을 설득하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켜 죽임을 당했다.
(3) 고려 중기의 무신 정권
고려는 군대에 의해 건국되었지만 권위는 쇠퇴하고 있었다. 1014년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반란의 영향은 오래가지 못했고 장군들은 현재 문관의 우위에 불만을 품었을 뿐이었다. 또한 의종 치세하에서는 군관의 안보 회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국가비상시에도 지휘권을 잡을 수 없었다. 정치적 혼란 이후 의종은 지방의 사찰로 여행을 가서 불경을 배우는 것을 즐기게 되었는데, 그 때 많은 민간인 장교들이 동행하게 되었다. 군인들은 대부분 무시당하고 사원과 연못 건설에 동원되었다. 고려정부는 1170년부터 사실상 막부와 같은 군사독재 속에서 무가계급, 특히 최씨 가문의 호족에 의해 지배되었다. 1170년에 정정부, 이의방, 이고가 이끄는 육군 장교 집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했다. 의종은 망명하고 명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토방으로 알려진 정예의 위병부대를 이용하여 왕위를 장악한 장군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고려의 군사지배가 시작되었다. 1179년에는 젊은 장군 경대승이 권력을 잡고 군주의 전권을 회복하고 국가의 부패를 척결하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는 1183년 사망하였고, 그 뒤로는 노비 출신 이의민이 뒤를 이었다. 그의 부패와 잔혹함은 1197년에 이의민을 암살하고 최고 권력을 잡은 장군 최충헌에 의한 쿠데타로 이어졌다.이후 61년간 최씨 집안은 군사독재자로 통치하면서 왕을 꼭두각시 군주로 유지하였다. 최충헌은 아들 최우, 손자 최항, 증손 최의에 의해 차례로 계승되었다. 최충헌은 지배권을 잡자 명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신종으로 왕위를 대신했다. 전직 군사지도자들과 다른 점은 최씨의 지배하에 학자들이 적극 개입했다는 점이며, 특히 유학자이자 관료였던 이규보가 그 중 하나였다. 신종이 죽은 뒤 최상훈이 그의 아들을 혜종으로 왕위에 오르게 했다. 7년 후, 혜종은 반란을 주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최씨는 유연한 고종을 찾았다. 최씨 가문은 충성하는 강력한 민간인을 세웠으나 몽골군의 지속적인 침략으로 국토 전체가 황폐화되고 방어력이 약화되었으며 군사 정권의 힘도 쇠퇴하였다. 군사정권 시절에 고려는 몽골제국의 침략에 거의 30년간 저항하다가 1258년 최씨 가문의 지배자가 궁정 내 반대자에 의해 암살되고 이후 왕권이 회복되어 몽골인들과 평화를 이루었다. 왕실의 권력 투쟁은 계속되었고 군사 정권은 1270년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고려는 왕실 혼인과 혈연 관계를 통해 몽골이 주도한 원나라의 반자율적 사위 국가가 되었다. 14세기 중엽에는 공민의 치세에 독립이 회복되었고, 이후 북쪽의 홍건적 군대와 남쪽에서의 왜구의 침략에서 승리하며 최영과 이성계 장군이 두각을 나타냈다. 1388년 이성계는 요동에서 명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군대를 돌려 쿠데타로 최영을 격퇴하였고, 1392년 고려를 새로운 조선으로 대체하여 474년간의 한반도 통치가 끝났다.
(4) 몽골의 침략과 원나라의 지배
1216년 몽골에서 도망쳐 온 거란족은 고려를 침략하여 여러 차례 한국군을 격파하고 수도 성문에 도착하여 남쪽 깊숙한 곳까지 진격하였으나, 김치열 장군에게 패하여 평안북도로 압송되었다. 나머지 거란족은 1219년 몽골-고려 연합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긴장은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계속되었고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30년 가까이의 전쟁 끝에 고려는 고려 왕정의 직접적인 왕조 통치로 몽골에 충성을 맹세했다. 1231년에는 1219년에 고려와 몽골 연합군이 고려를 침략했다. 1232년 궁정은 경기만 강화도로 옮겨졌다. 당시 군사정권자인 최우는 반격할 것을 주장했다. 고려는 30여 년간 저항하다가 1259년 마침내 평화를 호소했다. 한편 몽골군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경상도와 전라도 일부를 황폐화시키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6가지 주요 캠페인이 있었는데, 1253년에서 1258년 사이에 Jalairtai Korchi가 이끄는 몽골군은 한반도 전체 민간인의 생활에 막대한 희생을 치르는 괴멸적인 침략을 감행했다. 민간인들의 저항이 강해 강화 조정은 요새를 강화하려고 했다. 한국은 몇 번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한국군은 침략의 물결을 견디지 못했다. 몽골의 침략이 반복되면서 한국은 대혼란과 인명피해, 기근이 발생했다. 1236년에 고종은 1232년 침략 때 파괴된 팔만대장경을 재현하라고 명령했다. 이 불교 경전은 약 8만1000개의 목판에 새기는 데 15년이 걸렸고,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1258년 3월 독재자 최의가 김준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의 군 집단에 의한 독재는 끝났고, 몽골과의 평화를 주장하던 학자들이 권력을 얻었다. 고려는 몽골인에게 정복당하지는 않았지만, 수십 년간의 전투로 피폐해졌다. 몽골인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세자 원종을 원나라로 보냈고, 쿠빌라이 칸은 딸 중 한 명을 그와 결혼시켰다. 1260년에 몽골인들의 칸이 되어 중국 황제가 된 쿠빌라이는 고려의 대부분을 직접 통치하지 않았다. 송나라와는 대조적으로 고려는 아시아의 강국으로 취급되었다. 고려 왕조의 존속이 허용되었고, 몽골제국과 몽골 간의 결혼이 장려되었다. 항복을 거부한 일부 고려 관리들은 한반도 남부 섬에서 삼별초 반란을 일으켜 저항했다.
(5) 결론
지금까지 고려 중기 시대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어서 고려 후기 시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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