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대하여
시대적 흐름에 따른 각 나라에 대한 고찰
2. 백제
이번 글에서는 백제의 문화와 유산, 그리고 건국 신화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1) 문화
백제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의 언어를 연결하는 가상 집단인 부여어를 사용하는 고구려 출신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디글로시아의 경우 원주민인 삼한족은 같은 지역에서 이전으로 이주해 왔기 때문에 아마 같은 언어를 다양하게 사용했을 것이다. 고노로쿠로는 백제가 2개 국어로 귀족은 부여어를 하고 서민은 한어를 한다고 주장한다. 불교는 현재의 인도에서 시작된 종교로 4세기 후반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의 가르침인 달마를 한국에 처음 전한 승려는 다음과 같다. 순도는 조선 북부 고구려에 불교를 가져온 중국 승려였으며, 조선 중부 신라에 불교를 가져온 아도 승려, 한반도 남쪽의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인도 승려인 말라난타(4세기 후반)가 있었다. 백제 예술가들은 많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들여 그것들을 독특한 예술적 전통으로 정리했다. 백제의 예술작품은 불교적 주제가 매우 강하다. 많은 불교조각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는 백제미술의 전형적인 따뜻함을 표현하고 있다. 도교의 영향도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 중국 장인들은 541년 양조에 의해 왕국에 파견되었으며, 이는 사비 시대에 중국인들의 영향력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무령왕릉(501-523)은 중국 벽돌 고분을 모델로 중국 수입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금관 장식품과 금띠, 금귀걸이 등 백제 전통 장례용품도 많았다. 또한 백제 고유의 전통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이 무덤은 웅진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보인다. 기와의 섬세한 연화문, 복잡한 벽돌무늬, 도자기 곡선, 흐르듯 우아한 비문이 백제 문화를 특징으로 한다. 불교 조각이나 세련된 탑은 종교에서 영감을 받은 창의성을 반영하고 있다. 부여군 능산리 불교 절터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동대향로는 백제 예술을 대표한다. 백제 음악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7세기에 현지 음악가들이 중국에 헌정 사절단을 파견하여 그 무렵에는 독특한 음악적 전통이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유산
백제는 통일신라가 붕괴되면서 후삼국 시대에 잠시 되살아났다. 892년 경홍 장군은 완산(현재의 전주)을 거점으로 후백제(후백제)를 세웠다. 936년 고려 태조에 의해 후백제가 멸망했다. 현대 한국에서 백제 유물은 남서부, 특히 충청남도와 전라도의 지역 문화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금동제향로는 부여군의 중요한 상징이며 서산 마애삼존불상 백제시대 불상은 서산시의 중요한 상징이다. 백제는 현대 히라가나와 가타가나 문자가 후손인 만요가나 제도를 일본에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고사기나 일본서기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고. 직접적인 증거를 얻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2009년 4월 17일 오우치 군웅 오오우치 군오가 백제 조상을 모시기 위해 익산을 방문했다. 오우치씨는 임성친왕의 후손이다. 2010년 백제문화랜드가 문을 열었다. 이 테마파크는 백제의 건축과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창조신화
백제의 창조신화는 백제의 시조 온조와 그 형 비룡에 관한 백제의 창조이야기이다. 그들은 부여 왕조의 왕자였지만 왕세자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여를 떠나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다. 마침내 온조는 백제를 건국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창건 장소는 대방현에서 하남위례성까지 다양하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 또는 비룡이다. 백제 시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이다. 『삼국사기』의 『백제봉의』,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은 백제 시조를 온조 또는 비룡으로 표기한다. 『삼국사기』의 「지리」, 중국의 역사책 또는 「식일본기」에는 동명, 우태, 구태, 도모 등이 있다. 삼국사기 제23권 백제봉의 1호에 실린 온조왕 즉위 원년에 따르면 온조의 아버지는 북부세에서 절봉부요로 건너와 부여왕의 둘째 딸과 결혼한 주모 또는 주몽이다. 부여왕 사후 주몽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때 그는 두 아들을 낳았고 첫째는 비룡과 둘째 옹조였다. 그러나 주몽이 북부세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황태자가 되자 온조와 비룡은 오간·마려 등 10명의 신하를 데리고 한산으로 남하한다. 이들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두어 이 나라를 십제라 하였다. 이 해는 홍가 3년(기원전 18년), 원나라 성제이다. 비룡은 십신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미추홀에 살러 갔다가 미추홀 땅이 축축하고 물이 짜서 위례성으로 돌아와 사망한다. 그 후 옹조는 매일 사람들이 행복을 따라 백제라고 이름을 지었다. 계보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유래하였으며 성을 부여라고 한다. 기록된 비룡의 이야기에 따르면 백제 시조 비룡왕에게는 해불의 첩인 아버지 우타로 북부요와 절봉인 용타발의 딸인 어머니 소서노가 있었다. 서선호는 처음에 우태와 결혼하여 비류와 옹조를 출산했다. 우태가 죽은 후 소서노는 부여요에서 주몽을 도와 절봉에 고구려를 세웠다. 그래서 주몽은 소서노를 아내로 삼아 특별한 대접을 하고 비룡과 옹조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다루었다. 부여에서 태어난 아들 유룡이 도착하자 주몽은 그를 왕위 계승을 위한 황태자로 만들었다. 이에 비룡은 동생 옹조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페스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에 거주했다. 한편 북사와 수서에 따르면 한나라 요동 총독인 공선두는 위엄과 신뢰감이 강한 동명의 후손인 구태를 아내로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비룡국은 동이의 대국이 되었다고 한다.
(4) 결론
지금까지 백제의 문화와 유산, 그리고 건국 신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은 신라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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